사회당은 딱 10년 전인 2002년에 <통일좌파>란 팸플릿을 냈다. 좌파들이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주사파의 패권주의를 욕하느니 차라리 사회당과 함께 ‘제대로’ 좌파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 제안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실현되지는 못했고 사회당은 사회당대로(김영규 후보), 민주노동당 내부의 좌파들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후보를 내어(권영길 후보) 대선을 치렀다.
2008년 초, 결국 민주노동당은 분당했고 탈당한 좌파들은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사회당의 입장에서는 예언의 실현일 수도 있었지만, 총선까지 두 달 남짓의 시간적 압박 속에 진행된 ‘진보 재구성’ 논의는 사회당원들의 충분한 동의를 끌어내지 못했고 사회당의 일부 간부와 당원들이 탈당하여 진보신당으로 결합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범야권연대’와 구별되는 ‘진보통합’ 요구가 재등장했고, 결국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들이 연합하여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진보신당의 독자파와 사회당은 통합진보당을 진보의 우경화라고 비판해왔으며, 작년 가을 이후에 ‘진보좌파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별도의 정당 건설을 모색해왔다.
통일좌파 제안 후 10년, 비록 소수이지만 좌파의 가치를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사회당의 안효상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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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당 안효상 대표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 진보신당과의 통합은 어떻게 진척되고 있나?
공식적으로는 ‘진보좌파 정당’ 건설 논의다. 원래 노동계, 생태운동 등 여러 부문에서 좌클릭한 부분들을 모아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총선을 고려하여 우선 진보신당과 사회당 두 당의 합당으로 1차 창당을 하기로 했다. 총선 이후 이른바 2차 창당을 통해 세력을 더 결집하고 내용을 가다듬을 것이다. 대선 일정을 생각할 때 늦어도 여름 전에는 이를 마칠 생각이다.
실무논의를 진행 중인데, 통합에 대해 큰 이견은 (양쪽 모두)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합의된 것은, 1차 창당은 진보신당 이름으로 하기로 했고, 총선 이후 시간을 정해 당명, 강령, 당헌을 함께 만들고 더 많은 세력이 참여하게 하자는 것이다. 진보좌파 정당은 창당 과정이 길다. 일단 두 당이 협력해서 총선을 치른다.
- 구체적인 양당 통합 절차는?
2월 19일에 우리는 당대회를, 진보신당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수임기관을 구성할 예정이다. 그런 절차로 나가기로 사회당은 중앙위에서 결의했고, 진보신당은 주말에 있을 전국위원회에서 결의하리라 본다. 그러면 3월 초쯤 두 당의 합당 당대회를 열게 된다. 정당법상 수임기관 합동회의에서 결정하기만 해도 법적으로 통합은 된다. 그렇지만 총선이 있으니 3월 초 합당 당대회를 하는 게 상식적이다. 통합진보당도 얼마 전 통합당대회 겸 총선결의대회를 했다.
- 합당부터 하고 총선 이후에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자는 것인가?
우선 진보신당의 이름 자체가 과도기적 이름이다. 그리고 노, 심과 같은 과거의 그늘이 강하다. 새로운 정당은 당연히 새로운 이름이 있어야 하고, 강령도 바꿔야 한다. 노선을 엄청나게 바꾸지 않겠지만 제대로 정돈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바꾸느냐가 문젠데, 정치적으로 여름 전까지, 대선에 앞서 대중에게 디스플레이할 시간을 위해서 그때까진 해야 한다.
당명은 원칙적으로 이념과 정체성 표현해야 한다. 거칠게 얘기해서 ‘더 적색으로 더 녹색으로’ 이런 것이 좌파정당의 이념이라면 여기서 나오는 이름은 녹색사회당 정도가 무난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좌파 정당은 노동에 기초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노동이라는 개념을 꼭 넣자는 입장도 있다. 녹색, 사회, 노동 등의 이름과 함께 독일 좌파당처럼 좌파, 이런 당명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논쟁의 질서 자체가 안 잡혀 있고 중구난방 식이다. 그래서 일단 진보신당 이름으로 가고 이후 제대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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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명은 원칙적으로 이념과 정체성 표현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 사회당의 역사로 보면 유연해진 것 같다. 이는 진보좌파 정당이라는 과제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생존의 필요로 인한 것인가?사회당이 언제는 안 어려웠나. 생존이라 하면, 사회당은 지금까지도 생존해왔고 앞으로도 민중기본권 투쟁하고 우리가 가진 스피커 수준에서 이념적 가치 밝히면서 버틸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원내진출에 목매단 사람들도 아니고. 진보좌파 정당을 말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과제에 대해 우리는 ‘통일좌파’란 문제의식으로 표현한 적 있고 그 뒤로도 꾸준히 얘기해왔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정치 지형이 변하면서 우리의 말이 남들에게도 들리게 되었다. 진보혁신이 중요한 과제가 되면서 대화 상대들이 우리 얘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끼리 얘기로,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골대가 움직였다. 통일좌파 문제의식, 좌파의 과제에 대해 최근에 와서야 우리와 대화 상대와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지하철 문과 스크린 도어가 딱 겹치는 것처럼.
-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국면에 좌파 통합을 할 수도 있지 않았나?
일단 세력과 가치의 불일치 상태가 있었다. 당시 진보신당 주도세력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새로운 좌파라고 할 수 없었다. 당시 엔엘(NL)과 피디(PD), 즉 민노당 논쟁의 지형에서 갈라진 정도 이상 아니었다. 그리고 진보신당 만든 사람들이 사회당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사회당에 대한 습관적 판단 등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 뒤 곧바로 총선이 있었고 총선 이후 각자 길을 갔다.
그리고 2010년까지 사회당은 진보신당에서는 관심 밖이었다. 물론 세력 면에서는 규모가 작으니까 관심 밖이란 것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세력이라고 내용도 작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야권연대’라는 덫에 걸렸을 때, 그 내부에서 자기 정체성 찾기를 하게 된 것 같다. ‘왜 우리가 야권연대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 이런 것이다. 심상정의 사퇴와 노회찬의 완주로 인한 논쟁이 그러한 맥락에 있다. 그러면서 사회당의 얘기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 독자적 좌파정당의 과제를 뭐라고 보는가?
좌파는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주의, 생태주의라고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회로 가기 위한 당대의 과제를 모색하는 것도 좌파의 할 일이다. 즉 지금 무얼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를 (반대만으로 그치지 말고) 포지티브하게 극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얘기되는 복지국가나 케인즈주의도 하나의 처방인데, 그러나 그것을 과거에 제기된 그대로 가져와선 안 된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다들 경제민주화 한다고 하지만 결국 구체적 방안이 문제다. 99%의 삶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체제를 저들이 말하고 있느냐, 아닐 것이다.
현 시기 좌파의 주요 과제는 금융자본의 통제 내지 해체다. 금융자본에 반대하는 새로운 정치적 동맹을 묶어내야 한다. 또한 기본소득 실현도 좌파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현재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고 저급 일자리만 늘고 있다.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국유화든 사회화든 다수의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일종의 이행기 전략이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활성화시킨다. 물적 조건이 마련될 때 사람들은 활성화될 수 있다. 지금의 경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주변화, 원자화시킨다. 기본소득은 그것을 역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 재원을 금융에 대한 과세로 마련한다. 금융거래세는 파생상품 거래를 규제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금융과세는 단지 복지 위한 증세 수준을 넘어 지금의 경제구조를 다른 구조로 바꾸려는 것이다.
- 기본소득이 대중적 의제가 되었다고 보나?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대출 받아 등록금 대고, 졸업하면 일자리가 없어 시작부터 빚더미에 앉는다. 그리고 복지는 여전히 잔여적 복지라서 자기가 수혜자임을 입증해야 받을 수 있다. 기본소득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을 주는 것이니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실례로 예술가들이 기본소득에 많이 동의한다. 이번 총선부터 기본소득을 대중적 의제로 밀고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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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당 안효상 대표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 진보좌파 정당의 총선 전략은?
아직 거기까지 합의하진 않았다. 사회당 입장으로 보면 자기 의제와 대중의 역동성이 함께 가야 한다. 가령 금융자본에 대한 공격이라면 어큐파이 운동과 만나야 한다. 그렇게 당의 정체성에 기초한 선거를 해야 득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인이 지역구 혹은 비례 후보로 나가는가?
당이 요구하는 대로 할 생각이다. 사회당 활동가들은 (출마 경험 있고) 준비가 된 지역에서는 예비후보 등록하자고 했다. 울산 천안 청주 몇 군데에서 하기로 했다. 통합 전이긴 하지만 진보신당과 총선 공동행보를 가져갈 것이다. 진보신당도, 출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통합진보당으로 많이 간 상황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
- 대선에 대해서는?
정치세력이 대선에 후보는 내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아직 (후보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
-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대해 사회당원들의 정서는?
우리가 어디로 들어가는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다. 진보신당이 새로운 것을 만들자고 하나, 그들이 민노당 시절부터 온 사람들이라 일말의 구원(舊怨)과 의구심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집단은 어디든 자기를 벗어나면 이질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이념과 과제가 통하므로 별 문제 없다고 본다. 통합을 해도 ‘사회당파’라는 것이 금방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화학적 결합은 새로운 실천을 함께 하다보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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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당 안효상 대표는 “진보 정치인에게는 이념의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 통합을 앞두고, 사회당의 강점과 한계를 평가해본다면? ‘서클주의’, ‘고립주의’란 비판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사회당의 강점은 아무래도 응집력이다. 그리고 강령에 대한 이해도, 강령과 활동의 일치도가 높다.
서클과 서클주의는 다르지 않겠나. 사회당보고 규모가 적어서 서클적이라고 하면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친밀하고 응집성이 강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념과 삶의 일치도 가능하고. 또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어디 있겠나? 왜 고립되었나, 이게 문제인데 우리가 반성할 것도 있고 남들이 잘못한 것, 조건이 안 맞은 것도 있다. 내적으로는 우리의 정치적 미숙함이 있다. 청년진보당 만들 때 20대 중후반이었다. 당연히 미숙하고, 원칙을 강조하다보니 정치적 관계를 푸는 일이나 전략적 판단 등이 서툴 수 있었다.
- 사회당 대표를 하면서 느낀 점과 ‘진보 정치인’에 대한 정의를 부탁한다.
작은 정당 대표는 별걸 다 한다. ‘서클적’ 의미에서 선배이자 동료로 사람들을 챙겨야 하고, 그러면서 대외 활동도 해야 한다. 과거 사회당 대표보다는 대외활동 기회가 많았다. 진보연석회의, 현장투쟁 등, 많은 사람 만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진보 정치인에게는 이념의 일관성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한다. 이념이라고 하면 고답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념은 현실을 비춰보는 준거점이다. 강령에 비춰 자신이 보는 것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데, 되는 대로 주워섬기면서 실리를 좇아 왔다 갔다 하고, 이념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이랬다저랬다 바꾸고, 이런 일들이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