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부활… ‘도봉N’을 다녀오다
ㆍ동네에서 대체 어떤일이… 변화의 구심점
ㆍ티격태격 가려운 곳 긁어주고 서로 다른 생각을 담아내는
ㆍ‘소통의 장’이 필요해, 모여 봅시다
내가 발 디디고 사는 곳,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뭔가 연결고리를 찾아보자.주민들은 난생 처음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 봤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인기칼럼이 생기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김장 담그고 강좌를 열며 자주 모였다. 거창하지만, 간디의 말처럼 마을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지난 2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 거실은 저녁 때가 되자 편집회의실로 탈바꿈했다. 마을신문 <도봉N>을 만들기 위해 밤샘회의를 각오한 주민들의 표정에 활력이 넘친다. 남호진기자
_script language=JavaScript1.1 src="http://ads.khan.co.kr/RealMedia/ads/adstream_jx.ads/www.khan.co.kr/news@x89" type=text/javascript>스포츠칸에서 한게임을 즐기세요!
얼굴을 맞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옛 공동체 마을. 콘크리트 도심에서 마을의 개념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도심 한복판에서 지역 사람들의 소소한 소식과 사건을 담아내는 마을 신문, 잡지, 방송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아줌마들이 만드는 지역잡지 ‘동네한바퀴 더’, 지역 상인이 참여하는 잡지 ‘수유마을시장’, 마을 단파방송인 ‘마포FM’, 도봉구 주민의 마을신문 ‘도봉N’, ‘아름다운 마을’, 과천 사람들이 만드는 ‘과천 마을신문’…. 서툰 솜씨로 티격태격하며 자신들의 삶을, 이웃의 이야기를 직접 글로 쓰고 사진을 찍고 라디오 방송으로 만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거대한 국가 차원의 삶의 방식에 실망하고 다시 로컬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의 하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마을 신문과 방송이 생겨난 후 이들의 삶에는, 동네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사라진 마을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는지. 그 조짐이 엿보이는 마을신문 ‘도봉N’에 다녀왔다.
초보들의 좌충우돌
“참 갑갑한 달(12월)입니다. 발행일을 1주일이나 늦췄는데 아직 눈에 띄는 기사가 없어요.” “홈플러스에서 기사를 보여달라고 하는데 신문 나오기 전에 보여줘도 되나요?” “독자투고 시는 들어왔어요. 제목이 ‘타미플루’예요.” “저는 9일 현장 잠입취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봉N’은 매달 첫주 화요일 1만5000부를 발행한다. 제호 ‘N’에는 ‘도봉엔’ ‘도봉뉴스(News)’ ‘도봉네트워크(Network)’라는 뜻이 담겨있다. 지역 판화가 강우근씨가 새긴 제호는 며칠간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한 이름이다. 지난 6·7월 두번의 창간준비호를 내고 9월 창간호를 선보였다. 편집위원은 34년째 살고 있는 터줏대감 홍은정씨를 비롯해 전업주부, 홍삼 판매인, 사무기기 무역상, 사회복지사, 지역 활동가, 내년 3월 첫 아이를 낳는 임신부, 전직 국어교사 등 다양하다. 올초 동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우리 마을신문 만들어볼까” “까짓것 저지르고 보자!”며 일을 냈다. 그동안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동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그들만의 연결고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발행은 마을신문을 응원하는 120여명의 씨앗회원들이 낸 후원회비 3만원과 경조사 광고 ‘만원의 행복’ 수입으로 꾸려가고 있다. 회당 제작비는 인쇄·종이값 등 100여만원. 취재비·원고료 등은 없다. 배포는 주민 50여명이 한달 내내 함께한다.
몇 호 내지 않았지만 벌써 인기 칼럼도 생겼다. ‘겨리 아빠의 사진칼럼’ ‘우리동네 십대들이 전하는 생생뉴스’ ‘도봉N이 만난 사람들’ ‘이강오의 도시이야기’ ‘붉나무네 책방’ 등. 창간준비호 때 생활칼럼으로 소개된 나눔떡집 사장의 ‘떡집의 하루, 김 새는 날’도 눈길을 끌었다. 또 이웃의 생활 냄새가 풍기는 인터뷰도 인기다. 지역에 사는 시인 이생진씨의 인터뷰도 반응이 좋았다. 한번 인터뷰를 ‘당한’ 주민들은 칼럼 필자나 시민기자로 곧장 엮인다.
난생 처음 취재하고, 기사 쓰는 통에 시행착오도 많다. 원고는 편집위원들끼리 돌려 읽으면서 빨간펜으로 수정한다. 울긋불긋한 원고를 보며 낯을 붉히다가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이웃의 작품을 보며 피식 웃는다. “한번은 마감을 끝내고 지방에 볼일 보러 가는데 인쇄소에서 급하게 전화가 왔어요. 4개 면을 낼 때였는데 1개 면이 완전 비었다고요. 어찌나 황당하던지.”(지역활동가 이창림씨·32)
마음을 연 사람들, 다가오는 마을
마을신문이 생겨난 후 가장 큰 변화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이다. 신문을 받아들면서 은근슬쩍 기사거리를 건네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도심 속에 숨은 황금논 7마지기’ 기사는 동네 토박이를 자처한 편집위원들도 몰랐던 얘기다. 일명 무수골(도봉동 522번지)에 자리한 논을 주민 제보로 찾아가 첫 수확일 촬영까지 할 수 있었다. 지난 장마 때는 신방학초등학교 학생들의 통학로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넘친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달려가기도 했다. 이상호 시민기자의 ‘지하철보다 빨리 끊기는 마을버스’와 ‘동네 슈퍼,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힘들다’ 등의 고발성 기사도 공통의 관심사 속에 탄생했다.
중국음식점 월아천의 성현근 사장(40)은 요즘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얼큰한 짬뽕 국물을 만들다가도 혼자서 기사가 될 만한 것들을 떠올린다. 주위에 선행을 베푼 미담으로 자신의 인터뷰(11월호)가 실린 후부터다. 그는 “시민기자가 취재왔을 때는 놀랍고 부끄러웠는데 이젠 나도 우리 동네 기사 한번 써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독거노인 댁에 기름 보일러를 놓아주는 캠페인이나 청소년 예절교육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문 배포를 돕는 주부 이민자씨(49)도 “그동안 무심히 스친 동네 풍경과 사람들에게 새삼 눈길이 간다”며 “곤충을 좋아하는 아들 준범이와 환경과 관련된 글을 써보는 것이 희망”이라고 했다.
신문을 매개로 한 크고 작은 이벤트는 주민들이 자주 모이는 계기가 된다. 지난 9월에는 우리가 터잡고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갖자는 차원에서 ‘생태도시 도봉마을 시민강좌’를 열었다. 지난달 28일엔 신문사 주최로 ‘수다로 만드는 남자들의 김장잔치’를 벌였다. 남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유기농 배추로 직접 김장을 했다. 잘 버무린 배추의 반은 집으로, 반은 독거노인들의 집으로 배달하며 남자들은 수다쟁이가 됐다.
그러나 호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자수첩으로 미디어법 관련 의견기사가 나간 뒤다. 한 50대 독자는 “무슨 신문을 이 따위로 만드냐. 지역발전을 위해서 아파트값 올릴 생각을 해야지. 우리 아파트에는 신문 갖다놓지 마라!”며 항의전화를 해왔다. 신문이 찢기는 일도 일어났다. 지난 6월 도봉구 구의원들에게 지급된 과도한 의정비 인상분을 반환하라는 법원 판결에 도봉구가 항소한 일을 1면에 게재했을 때다. 도봉구의회의 한 관계자가 음식점에 비치된 신문을 찢고 나머지 신문을 집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성종씨(40)는 “기존의 지역운동이 일정한 틀에 짜맞춰져 소수에 머무르던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프레임을 갖고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서로 다른 생각까지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있을 때 진정한 주민 자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술만 마시는 분위기였는데 신문이 나온 후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사안별로 서로의 생각을 털어놓게 됐다고 했다.
최근 신문 제작에 참여하게 된 이재춘(39)·송현아(35) 부부는 “이사 온 지 2년째다. 그동안 동네에 끼고 싶어도 마땅한 계기가 없었다. 창간 행사에 참가하며 마을신문을 알게 됐고 사람들이 지역이 아닌 중앙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마을신문이 가능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발행인 홍은정씨는 “우리 일상에서는 지자체 조례가 중요한 때가 많은데도 중앙에서 다루지 않으면 이슈가 되지 않고 세상에 없는 일이 된다. 그 내용을 아예 우리가 모르기도 한다. 내가 발 디디고 사는 곳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더 잘 알게 된다면 살아가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욕구 때문에 마을신문이 생겨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홍씨는 내년 하반기쯤 문턱을 더욱 낮춘 인터넷방송도 시작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도봉N’ 창간준비호 어느 기사에는 인도의 간디가 말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가 인용돼 있다.
방송·잡지·신문 등 도심속 매체 창간 새 바람
“목말랐어요, 관계의 길을 트고 싶었죠”
“어떤 목마름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일반 시민을 대변해주는, 삶에 필요한 것을 전달해주는 매체가 없다고 할까요. 정치인의 반복되는 이합집산이 매번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마포FM 송덕호 방송본부장)
마을 주민 100여명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소출력 라디오방송 ‘마포FM(사진)’은 최근 다양한 시도로 화제를 낳고 있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1시까지 15개의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PD·리포터·MC·엔지니어 등 제작진은 모두 서울 마포 주민들이다. 요즘은 생방송 <톡톡마포>가 인기다. 유치원 아이부터 70·80대 어르신까지 스튜디오에 나와 편하게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씩 한다. 이처럼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원하는 곳이 늘고 있다. 매일 방송하면서 지역 주민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개국이 쉽지는 않다.
잡지나 마을신문 발행은 좀더 활기를 띠고 있다. 오는 12일에는 잡지 ‘동네한바퀴 더’가 새로 나온다.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인터넷 ‘줌마네’의 글쓰기 강좌에 참여한 이들이 기획과 취재·디자인·홍보 등 모든 과정을 맡았다. 이들은 창간을 알리는 글에서 ‘왜 동네잡지인가? 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남아 있는 동네에는 관계 맺을 길이 사라지고 있다. 다시 길을 잇기 위해 잡지를 만든다. 담을 넘어 경계를 지나 우리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창간호는 첫번째 공간으로 서울 마포구 연남동을 소재로 삼았다.
서울 도봉구 수유시장을 거점으로 한 잡지 ‘수유마을시장’은 색다르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공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글쓰기 교실에 참여한 상인들을 계기로 시장 사람들의 참여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100% 이 지역 사람들의 힘으로 잡지를 만드는 것이다. 수유시장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승원씨의 ‘상인이 들려주는 재테크 에세이’를 비롯해 ‘대표브랜드 시리즈-순대국밥거리, 부침개거리’ 등 생생한 기사가 많다. 상인들과 함께 잡지를 만드는 최인화씨는 “시장 옆 골목에 외가가 있어 어려서부터 이 동네에서 뛰어놀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유흥가가 늘어나고 번잡해지면서 따뜻한 기억들이 사라져 안타까웠다. 잡지를 만들면서 이곳 사람들과 좀더 근원적인 삶의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2005년 창간돼 1만3000부를 발행하는 ‘과천마을신문’은 지난 3개월간 재정·인력 문제로 신문을 내지 못하다가 최근 12월호를 발행했다. 최현 편집장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 목소리를 내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된 신문이다. 주류가 아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발행을 거듭할수록 주민들의 삶과 생활을 끌어내 함께 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재정적 어려움도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 신문은 주민 모두가 ‘동네 전문가가 되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목말랐어요, 관계의 길을 트고 싶었죠”
마을 주민 100여명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소출력 라디오방송 ‘마포FM(사진)’은 최근 다양한 시도로 화제를 낳고 있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1시까지 15개의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PD·리포터·MC·엔지니어 등 제작진은 모두 서울 마포 주민들이다. 요즘은 생방송 <톡톡마포>가 인기다. 유치원 아이부터 70·80대 어르신까지 스튜디오에 나와 편하게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씩 한다. 이처럼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원하는 곳이 늘고 있다. 매일 방송하면서 지역 주민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개국이 쉽지는 않다.
잡지나 마을신문 발행은 좀더 활기를 띠고 있다. 오는 12일에는 잡지 ‘동네한바퀴 더’가 새로 나온다.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인터넷 ‘줌마네’의 글쓰기 강좌에 참여한 이들이 기획과 취재·디자인·홍보 등 모든 과정을 맡았다. 이들은 창간을 알리는 글에서 ‘왜 동네잡지인가? 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남아 있는 동네에는 관계 맺을 길이 사라지고 있다. 다시 길을 잇기 위해 잡지를 만든다. 담을 넘어 경계를 지나 우리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창간호는 첫번째 공간으로 서울 마포구 연남동을 소재로 삼았다.
서울 도봉구 수유시장을 거점으로 한 잡지 ‘수유마을시장’은 색다르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공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글쓰기 교실에 참여한 상인들을 계기로 시장 사람들의 참여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100% 이 지역 사람들의 힘으로 잡지를 만드는 것이다. 수유시장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승원씨의 ‘상인이 들려주는 재테크 에세이’를 비롯해 ‘대표브랜드 시리즈-순대국밥거리, 부침개거리’ 등 생생한 기사가 많다. 상인들과 함께 잡지를 만드는 최인화씨는 “시장 옆 골목에 외가가 있어 어려서부터 이 동네에서 뛰어놀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유흥가가 늘어나고 번잡해지면서 따뜻한 기억들이 사라져 안타까웠다. 잡지를 만들면서 이곳 사람들과 좀더 근원적인 삶의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2005년 창간돼 1만3000부를 발행하는 ‘과천마을신문’은 지난 3개월간 재정·인력 문제로 신문을 내지 못하다가 최근 12월호를 발행했다. 최현 편집장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 목소리를 내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된 신문이다. 주류가 아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발행을 거듭할수록 주민들의 삶과 생활을 끌어내 함께 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재정적 어려움도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 신문은 주민 모두가 ‘동네 전문가가 되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