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소년 멘토링을 돌아보며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성북나눔의집>가정방문 멘토링 학습 멘토로 참가했다.
멘토링 방문학습 활동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 11월까지 3년 사업으로 <시흥시민연대>, <안산나눔과연대>, <인천서해주민센터>, <강북삼양주민연대>, <성동희망나눔>, <성북나눔의집>이 컨소시엄 형태로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진행한 것이다.
나는 관련 사업이 4개월 후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노점상을 그만두고 마땅한 생계대책이 없었고 공부방 <파랑새 인;연맺기학교>를 운영해오면서 1:1 관계맺기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던 차였기 때문에 멘토로 참여하게 되었다.
가정방문 멘토링 학습은 멘토인 교사와 멘티인 초등학생들(일부 중학생 포함) 간에 1:1 관계맺기와 기초학습, 부모와 자녀의 관계맺기, 다양한 자원에의 연계,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일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성북나눔의집>의 경우 1명의 팀장, 10명의 멘토, 약 70여명의 멘티가 함께 하고 있었다. 10명의 멘토가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7명까지의 멘티를 맡아 주2회 총 2시간을 멘티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책읽기도 하고 나들이도 가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는 멘토 교육 자료, 다른 멘토들이 작성한 활동일지, <성북나눔의집>에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인 <꿈틀>의 책을 보면서 내가 담당하게 될 친구, ‘멘티’를 기다렸다. 멘토링 학습단을 총괄하고 있던 안영신 팀장의 조언과 경험도 듣고 기존부터 활동하고 계신 멘토들이 멘티들과 만나는 자리에 가서 참관하기도 했다. 청소도 안 되고 정리되지 않았던 지하방에서 2층 방으로 옮긴 친구를 보며 함께 기뻐하던 멘토, 두 남매가 자활 일을 하러 나간 엄마가 올 때까지 집을 기다리는 것 때문에 요리거리를 바리바리 챙겨가던 멘토, 방황하는 형 때문에 많이 위축되어 있던 친구를 책을 읽어주며 다독여주던 멘토... 멘토마다 본인의 스타일, 아이들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한 멘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주위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멘토링을 통해 알게 되어 너무 기뻐요.’
첫 친구와의 만남! 안영신 팀장과 함께 월곡동 허름한 집들과 골목을 지나 임대아파트에 들어갔다. 가족 4명이 10평도 안 되는 곳에 살다 보니 누울 공간이 마땅하지 않아보였다. 조용한 성격의 그 친구(초등학교 2학년)와 어떤 형태로 만나야할까? 처음에는 이것저것 말을 걸어도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래도 공부를 가르쳐줬으면 한다고 하시는데 영어와 수학을 월등히 잘하고 있는데다 멘티가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말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멘토링 시간 때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다 하는 게 무리였지만 대신 그날 분량의 기초학습을 후딱 해치우고 우리는 야구방망이며 배드민턴 채, 때로는 내가 가져온 축구공을 가지고 아파트단지 놀이터로 갔다. 평소에는 내성적이었던 우리 멘티가 동네 형들, 친구들과 운동하면서 어울릴 때면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도 어른이 와서, 그것도 오후 3~ 4시에 와서 같이 놀아주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다가 차츰 함께 놀았고 다음 만남을 기다렸다. 1:1 대화를 지향했지만 이렇게 여럿이 어울릴 때의 즐거움이란...^^ 우리 멘티가 야구에 너무 심취해 있다가 동네 형이 휘두른 방망이에 맞았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만난 친구는 시각장애인 할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었다. 부모님이 집을 나가 더 이상 연락이 없지만 세 식구가 서로를 의지하며 밝게 크고 있었다. 여동생을 담당하고 있던 멘토와 이 친구들의 집을 나올 때마다 감탄하곤 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시지만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아빠처럼, 엄마처럼 손자손녀를 챙기시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으리라’면서... 하지만 이 친구는 집을 방문하여 공부를 가르쳐주는 대학생들이 있고 방과 후엔 지역아동센터에 나가고 있어 어떤 가정방문 멘토링을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월, 수, 금요일엔 성북구청 축구단 훈련이 있어 항상 바빴다. 이 친구와는 위인전에 대한 책을 읽고 간단히 수학, 영어를 공부하고 1:1 축구를 하는 형태로 어울렸다.
다음 친구는 위 친구와 같은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할머니, 알콜중독이신 아빠, 지체장애인 엄마와 같이 살았다. 사실상 할머니께서 돌보고 계셨다. 그러나 이 친구와의 만남은 만만치 않았다. 거의 한달 동안 집 앞에서 기다려도 멘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학교 숙제를 못챙겨가다 보니 학교에서 나머지 숙제를 하다가 곧바로 지역아동센터로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가정상황도 살필 겸 집에서 진행해야할 프로그램을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나 진행하는 것으로 바꿨고 마침 아이들 한명한명을 잘 살펴주시던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의 도움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숙제를 못해갈 경우가 많고 기초실력이 많이 떨어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이트보드에 대고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하면서 기초학습을 했는데 친구들 앞에서 있을 때와는 달리 멘토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 화이트보드에 문제를 풀게 되니 매우 신나했고 학교 진도도 금방 따라갔다. 나중에는 옆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4학년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와서 할리갈리 등의 게임을 하며 어울리기도 했다. 핸드폰 갖고 놀기를 좋아하던 이 친구가 언젠가는 “선생님 사랑해요 하루 잘 보내세요” 라는 메모를 남겨 놓기도 했고 이별을 알려야했던 자리에서는 “멘토링 선생님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사랑해요”라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그 메모를 확인했을 때의 기쁨이란... 눈물이 핑 돌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친구와도 함께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친구는 아빠가 무속인이셔서 돌볼 형편이 아니었고 예전에도 지금은 강원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누나와 둘이서 방치된 채로 지내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 게 되어 얼굴도 많이 밝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시기에 기초학습을 하지 못한 터라 6학년인데도 불구하고 3~ 4학년 과정을 지역아동센터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또래 친구들에 비해 어린 모습이었다. 영어로 이름쓰기, 생활영어 등으로 영어 공부도 하고 소수, 분수를 공부하는 식으로 기초부터 다시 공부했는데 영어로 따로 노력할 염두를 내지 못하다 보니 이름 쓰는 것 외에는 남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혼자서 이름도 쓰고 자랑하는 것을 볼 때 너무 기뻤다. 대부분 시간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필요할 것 같아 근처 놀이터에서 배드민턴을 했다. 이제 중학생인데 어떻게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할지 걱정이되었지만 너무도 순수한 친구였다.
초등학교 2학년인 친구도 한 명 있었다. 형이 자폐성, 정신지체 장애가 있고 형과 함께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고 있는 친구다. 전에 멘토링에 참여하다가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게 되면서 멘토링은 중단했던 친구인데 장애가 있는 형, 그리고 최근에 태어난 동생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아 멘토링을 나와 다시 하게 되었다. 전에 멘토를 하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기초적인 학습이 되지 못해 수학 등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하셨는데 당시 멘토링 노력으로 나와 만나게 되었을 때는 수학에 대해 매우 자신감이 강할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어있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숙제를 하고 책을 읽고 축구를 하면서 어울렸는데 형과 마찬가지이지는 않지만 ADHD로 인해 자기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하거나 힘들어하는 친구를 묵묵히 챙겨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느 새 11월... 안영신 팀장 님이 이 사업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성북구청에 만나 성북구청이 이 사업을 추진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노동부에서 1년 연장했으면 하던 바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자료집을 제작하고 ‘쫑 파티’를 하는 것으로 사업을 종료하면서 모두들 많이 아쉬워했고 다시 예전처럼 지내게 될지도 모르는 친구들을 걱정했다. 지역아동센터나 공부방, 그 외에 이러저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아예 방치되어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작은 도서관 <꿈틀>에서 운영하고 있는 책 읽기 멘토를 보내는 것으로 대안을 찾기도 하고 구청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멘토를 제안하여 기초 학습을 지원하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 1억여원의 예산과 의지만 있으면 다이들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이런 멘토링은 여러 방면에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공부방도 마찬가지지만 집단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일으켜 공부방을 그만둔 친구들을 1:1 멘토링을 통해 만날 수도 있다. 장애아동 주말학교 등이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 장애아동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매우 부족하고 그 부담을 부모나 양육자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문화가정 등도 마찬가지다. 자원활동가 풀(pool)을 활용하고 거점과 책임자, 체계만 마련된다면 충분히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고 이어갈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동 10명 중 1명이 빈곤아동이다. 단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정(약 23만명) 및 차상위 계층(약 47만명) 등 소득 측면의 빈곤아동 외에도 결식아동(약 20만명), 해체가구 아동(약 34만명), 학대, 방임아동(약 60~150만명)까지 합치면 약 100만명 정도가 빈곤아동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사회에 묻고 싶다. 언제까지 이들을 방치할 거냐고...
- 사회당 성북구 당원모임 책임자 신희철
(011-9728-7418, commune96@hanmail.net)
p.s 멘토링 때 만났던 친구들은 지금도 틈틈이 연락도 하고 지난 6일 내 결혼식 때도 와서 축하해주기까지 했다.
p.s 아래는 한 친구가 헤어지면서 쓴 편지
신희철 쌤 에게
희철이형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내일이 멘토링이 끝나지
그래서 내가 형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그리고 내가 형이 보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동안 슬러시 사준거랑 같이 놀아준거 고마웠어
내가 요즘 축구랑 야구를 많이 늘었어.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꿈틀에 자주 놀러와 알았지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아. 그리고 신종플루를 안걸리게 손도 자주 씻어! 알겠지
2009년 11월 26일
재현 씀